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셀레우코스 제국 (문단 편집) === 내전기 === [[안티오코스 4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안티오코스 5세]]는 당시 8세에 불과해서 시리아에서 마카베오 전쟁을 수행하던 리시아스가 섭정을 맡았다. 안티오코스 4세의 조카이며, 당시 로마에 볼모로 가 있던 [[데메트리오스 1세]]는 [[원로원]]에 귀국하게 해달라고 청했지만, 원로원은 장성한 데메트리오스보다는 어린 아이인 안티오코스 5세가 왕위를 물려받는 편이 셀레우코스 제국을 조종하기 쉬울 거라고 판단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리시아스는 어린 왕과 함께 마카베오 전쟁을 이어가 [[유다 마카베오]]의 형제를 죽이는 등 몇 차례 승리를 거뒀으나, 안티오코스 4세의 친구이자 메소포타미아로 원정을 떠나있던 필리포스가 선왕의 붕어 소식을 듣고 귀국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이러다가는 권력 기반을 잃을까 두려워해 유다 마카베오와 평화 협정을 체결한 뒤 안티오키아로 돌아갔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필리포스가 이미 안티오키아에 도착했지만, 리시아스는 그를 무찌르고 안티오키아를 탈환했다. 얼마 후, 원로원이 셀레우코스 제국이 기원전 188년에 체결한 아파메아 조약에서 규정된 것보다 많은 군함과 코끼리를 보유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사절을 보내 항의했다. 리시아스는 감히 로마에 대적하지 못하여 군함을 침몰시키고 코끼리를 죽이는 걸 허용했다. 하지만 백성들이 이러한 굴욕에 분노했고, 기원전 162년 사절 중 한 사람이었던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기원전 165년 집정관)|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가 라오디케아에서 피살되었다. 데메트리오스는 이 틈을 타 원로원에 접근해 자신을 왕으로 밀어주면 로마에 철저히 복종하겠다고 약속했다. 원로원이 이번에도 거절하자, 친구 [[폴리비오스]]의 조언에 따라 극비리에 로마를 탈출해 안티오키아로 잠입한 뒤, 귀족들을 포섭하여 기원전 161년 반란을 일으켜 수도를 장악하고, 리시아스와 안티오코스 5세를 처형했다. [[데메트리오스 1세]]는 제국의 국력을 갉아먹고 있는 [[마카베오 전쟁]]을 끝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바키데스 휘하의 원정대를 파견하여 유대 도시들을 하나둘씩 공략하면서 [[유다 마카베오]]를 압박했다. 기원전 160년, 바키데스는 엘라사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마카베오는 전사했다. 이로써 유대의 지배권을 확보한 데메트리오스 1세는 뒤이어 자신에게 반란을 일으킨 메디아의 사트라프 티마르코스를 직접 공격하여 전사시켰다. 티마르코스의 폭정에 시달렸던 바빌론 주민들은 그를 구원자라는 뜻의 '소테르'라고 불렀다. 여기에 카파도키아에서 왕을 칭한 [[아리아라테스 5세]]를 폐위시켰다. 그러나 [[로마 공화국]]은 셀레우코스 제국이 데메트리오스 1세의 통치하에서 다시 강성해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티마르코스의 형제 헤라클레이테스는 원로원에 출두해 자신을 [[안티오코스 4세]]의 아들이라고 칭하는 [[알렉산드로스 1세 발라스]]를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원로원은 그에게 자신의 왕국의 지배권을 주장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세나투스 콘술툼>(senatus Consultum)을 제공했지만, 그 외에는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다. 알렉산드로스 일당은 사비로 용병을 고용한 뒤, 페니키아 해안의 프톨레마이스-아케에 상륙했다. 그는 페르가몬의 왕 아탈로스 2세와 카파도키아의 왕 아리아라테스 4세의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도움은 이집트의 파라오 [[프톨레마이오스 6세]]로부터 왔다. 그는 군사적 지원을 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딸인 [[클레오파트라 테아]]를 알렉산드로스 1세 발라스의 반려자로 삼게 했다. 이후 3년간의 내전을 치른 끝에, 기원전 150년 알렉산드로스 1세 발라스가 데메트리오스 1세를 붙잡아 처형하고, 셀레우코스 왕조의 단독 군주가 되었다. 이렇듯 셀레우코스 왕조가 내전을 치르느라 혼란스러운 틈을 타, 파르티아는 [[미트리다테스 1세]]의 지휘하에 메디아를 침공하여 기원전 148년경 공략에 성공했으며, 뒤이어 [[엘리마이스]]와 페르시스 일대도 평정했다. 또한 기원전 147년경 엘리마이스의 왕 캄나스키레스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옛 수도인 수사를 점령했다. 기원전 147년, 데메트리오스 1세의 장남이며, 가족이 피살될 때 가까스로 빠져나왔던 [[데메트리오스 2세]]가 라스테네스가 이끄는 크레타 용병대와 함께 시리아로 돌아와 여러 영토를 장악했다. 여기에 [[유다 마카베오]]의 동생 요나단은 야파와 아슈도드를 공략하였고, 프톨레마이오스 6세는 알렉산드로스 1세 발라스를 지원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기원전 145년 시리아로 진군해 셀레우키아 피에리아를 포함한 해안가의 모든 셀레우코스 도시들을 장악하였다. 하지만 프톨레마이오스 6세는 곧 편을 바꾸기로 하고, 클레오파트라 테아를 알렉산드로스로부터 떼어낸 뒤 데메트리오스 2세와 재혼시켰고, 북쪽으로 진군하여 안티오키아에 접근했다. 안티오키아 수비대 지휘관 [[디오도토스 트리폰]]과 히에락스는 프톨레마이오스군에게 도시를 넘겨주었다. 당시 킬리키아에서 반란군과 맞서고 있던 알렉산드로스는 이 소식을 듣고 급히 안티오키아로 돌아왔지만, 프톨레마이오스 6세와 데메트리오스 2세는 오이노파루스 강 전투에서 그를 격파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아라비아로 도망쳤지만, 곧 암살당했다. [[데메트리오스 2세]]는 크레타 용병대와 이집트의 지원 덕분에 왕위에 오를 수 있었지만, 백성들은 그에게 복종하기 싫어했고, 시리아 남부 대부분을 정복한 프톨레마이오스 6세에게 셀레우코스 제국의 왕위에 올라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프톨레마이오스 6세는 로마가 헬레니즘 국가들이 통합되는 것을 절대로 용인하지 않을 걸 잘 알았기에, 데메트리오스 2세를 섬기라는 말을 남기고 이집트로 돌아갔다. 그러나 곧 문제가 터졌다. 크레타 군인들이 안티오키아 시내를 거리낌없이 약탈하자, 안티오키아인들이 대규모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진압군이 학살을 자행한 후에야 가까스로 질서를 회복할 수 있었다. 살아남은 시민들은 크레타 용병대와 데메트리오스 2세를 증오했다. 한편, 알렉산드로스 1세 발라스를 섬기다가 정권이 바뀐 뒤 축출당한 [[디오도토스 트리폰]] 장군은 아라비아로 도망쳤다가, 그곳에서 알렉산드로스의 어린 아들 안티오코스를 확보한 뒤, 그를 '[[안티오코스 6세]]'로 선포하고 안티오키아로 쳐들어갔다. 데메트리오스 2세는 이를 막으려 했지만, 병사들이 임금 삭감에 불만을 품고 디오도토스에 귀순하는 바람에 패했고, 아파메아와 안티오키아의 지배권을 빼앗긴 채 그는 셀레우키아 피에리아에 자리를 잡았다. 안티오코스 6세는 기원전 142년 또는 141년에 죽었고, 디오도토스가 스스로 국왕에 등극했다. 양자는 셀레우코스 제국을 양분한 채 대치했고, 유대 왕국을 포섭하여 상대를 압도하려 했다. 그동안 셀레우코스 제국의 속국으로 취급받던 [[하스몬 왕조]] 유대 왕국은 이 과정에서 완전한 독립을 얻을 수 있었다. 기원전 139년, 데메트리오스 2세는 동방 영토를 계속 잠식하는 파르티아에 대항하기 위해 출진했다. 처음에는 몇 차례의 소규모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기원전 138년 산맥을 넘던 중 매복에 걸려 패배하고 포로 신세로 전락했다. 이 여파로 셀레우코스 제국의 바빌로니아 일대는 파르티아의 영역으로 들어갔고, 나머지 영토는 디오도토스 트리폰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클레오파트라 테아는 셀레우키아 피에리아에서 농성하면서, 로도스에 있던 남편의 동생 [[안티오코스 7세]]에게 결혼을 제의했다. 안티오코스 7세는 즉시 승낙하고 셀레우키아 피에리아에 상륙한 뒤, 디오도토스와 격돌해 기원전 138년 중반 안티오키아를 탈환했다. 디오도토스는 도르로 이동한 뒤 농성전을 벌였으나 함락이 임박하자 해로를 통해 오르토시아로 탈출한 뒤 고향인 아파메아로 피신했으나 그곳에서도 포위되었다. 결국 기원전 138년 말 또는 기원전 137년 초 처형되거나 사로잡히기 전에 자살했다. 이로써 안티오코스 7세는 셀레우코스 제국의 단독 군주로 자리잡았고, 기원전 138년 10월경 클레오파트라 테아와 결혼해 외아들 [[안티오코스 9세]]를 낳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